하기 싫은 것들을 굳이 굳이 해야 하는 이유.
하기 싫은 것들을 해야 한다.
찬물샤워, 새벽 5시 기상, 20km 러닝, 영어 공부. 또 뭐가 있을까. 뭐가 됐든 떠올렸을 때 하기 싫고 귀찮은 것들. 놀라운 사실은 그 하기 싫어 하는 주체는 ‘내’가 아닐 수 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면, 인간의 비루한 몸과 연약한 마음은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반응할 뿐이라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신호’를 ‘내’가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 신호에 대한 나의 액션은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저 반응만하면서 사는 친구들은 동물과 식물, 파충류, 곤충 등이 있다. 그리고 짜증나면 짜증내는 인간 부류들.
주체적인 삶의 근간은 ‘선택’에 있다.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 내가 운전대를 쥐고 있다는 감각 말이다. 사이코패스적인 생각이지만, 누가 그러더라. 고통을 느끼는 것도 내가 아닐 수 있다고. 관조적으로 ‘나’를 이 몸뚱아리에 갇힌 영혼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고통을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가끔씩 새벽 4시반에 일어나서 한강에 뛰러 나간다.
알람에 깨어나자마자 안해도 되는 이유가 하나씩 떠오른다. 그럴 때 ‘ㅈ까’하고 뛰쳐나올 수 있어야 한다. 하나도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니; 내가 가장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이 몸뚱아리 하나와 오늘 주어진 ‘하루’다. 내 몸뚱아리 하나 통제 못하는데 뭘 할 수 있을까.
자기 전에 기상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일어나라.
제일 이해 안가는 말이 “나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망국적인 소리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웃긴 말이 없다ㅋㅋ 가끔씩 일어날 시간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면서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는 내 스스로의 모습이 스쳐갈 때 오싹함을 느낀다.
알람은 하나만 맞추고 한 번에 일어나야 한다.
다음날 별다른 일정이 없어도, 심지어 백수인 요즘도 일어날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일어나려고 한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알람은 누가 맞춰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맞출 것이다. 내가 스스로 맞춘 시간에 그대로 일어나는 것. 일어나자마자 to do list 체크하고 시작이다. 일종의 작은 성공, 오바하면 작은 승리다. 알람에 제 때 못일어나면서 시작하는 아침은 그 날 하루를 망쳐버린다. 시작부터 조지고 시작한단 말이다.
하루라는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빡세게 바쁘게 뭘 할 필요 없다. 내가 해야겠다고 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한 시간에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는 것.
쓰고나니 통제광처럼 쓰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해서 남을 내 입맛대로 통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예전에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