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조선인'으로 사는 사람들

한국 사회는 도덕적 우월성과 사회적 위계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한'을 동력 삼아 질주하는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 유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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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조선인'으로 사는 사람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오구라 기조

한 문장 요약

한국 사회는 도덕적 우월성사회적 위계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한'을 동력 삼아 질주하는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 유기체'다.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

한국의 역동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항상 궁금했다. 그 에너지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숨 막히는 부작용도 명확하다. 이 책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치나 경제 구조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깊은 사고방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언어 '도덕'이다.

한국인은 개인보다 관계를 먼저 보고, 사실보다 도덕을 먼저 따진다. 법이나 계약보다도 위에 있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 "누구의 잘못인가?" 질문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제품이 맘에 안 들면 "품질이 별로네"로 끝나지 않는다. "소비자를 기만했다"라며 도덕적 죄목을 씌운다. 연예인은 연기력이나 노래 실력보다 인성 논란 하나에 나락을 가고, 정치는 정책 대결이 아니라 "누가 더 정의로운가"를 다투는 도덕극이 되어버렸다.

한국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도덕'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환원하고, 이를 다시 '권력의 수직적 위계'로 치환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이, 학벌, 직장, 재산을 훑어보며 상대방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한다. 그 위치에 따라 말투와 태도도 달라진다. 한국인에게 도덕은 단순히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신분과 명분을 선점하기 위한 필사적인 권력 투쟁의 도구인 것이다.

눈치

우리가 흔히 배려라고 생각하는 '눈치'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지금 이 공간에서 누구의 영향력이 가장 센지, 누구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는지, 지금 내가 어떤 말을 하면 환영받고, 어떤 말을 하면 위험한지. 이걸 굉장히 빠르게 계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치를 잘 본다는 것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니라, 관계와 권력의 구조를 빠르게 읽는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진정한 행복보다는 남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서는 것이 훨씬 중요해진다. 주자학적 연역 사고와 수직적 위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만족감보다 남들이 인정해 주는 확실한 계급장을 달았을 때 비로소 사회적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다"라는 걸 타인의 눈을 통해 확인받아야만 비로소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을 받는다.

위계 구조의 상단에 서지 못하면 단순히 ‘조금 아쉬운 상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은근한 무시를 당하거나 도덕적으로까지 미흡한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야. 그러다 보니 한국인에게 인정받는 위치를 확보하는 건 단순한 야망이 아니라, 사회적 매장이나 무시를 피하기 위한 생존 투쟁이자 강력한 안전망이 되는 거야. 내 행복을 챙기는 건 ‘선택’이지만,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는 위치를 지키는 건 ‘필수’처럼 느껴지는 환경인 거지.

어려서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당하고, 타인의 기분과 분위기, 사회적 기준을 맞추도록 훈련받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뭘 할 때 진짜 행복한가?"(내면의 기준)를 고민하는 감각은 마비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 정도 나이면 어디쯤 서 있어야 정답인가?"(타인의 기준)가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결국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할 때 느끼는 행복보다, 남들이 "너 정말 성공했다", "잘나간다"라며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낼 때 오는 도파민과 안도감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 안타까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좇는 건 일종의 ‘사치’나 ‘탈선’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른 채, 남들에게 인정받는 상위 서열로 올라가기 위해 평생을 ‘한’을 품고 달리는 이 구조. 이게 바로 수많은 한국인이 겉으로는 성공해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늘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 아닐까?

그렇다면 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서로의 위치를 의식할까?

이 책은 그 뿌리를 조선 500년을 지배했던 주자학, 성리학에서 찾는다. 성리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그 위에 존재하는 원리와 이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이 현실적으로 효율적인가보다 무엇이 원칙적으로 옳은가를 먼저 묻는다.

한국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나 실용성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원리(리, 理)를 최상위에 두는 연역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의 작은 흠결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많다. 완벽한 도덕적 이상향을 먼저 세워두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저 사람은 근본부터 잘못됐다"라며 능력이든 성과든 모조리 부정해 버린다. 문제를 해결할 때도 '실제로 효과가 있는가'보다 '원칙적으로 올바른가'가 먼저다. 현실 정치나 일상에서 상대의 작은 흠결을 잡아 끌어내리는 치열한 폭로전과 "네가 맞냐, 내가 맞냐"를 다투는 이론 투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에너지의 원동력은 '한(恨)'이다.

한국인은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이상적인 자리'를 아주 강렬하게 의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의 내 위치와 그 이상 사이에는 늘 거대한 괴리가 존재하고, 여기서 고통과 억울함, 즉 '한'이 발생한다. 한국인들은 이 한을 풀기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맹렬하게 교육받고, 일하고, 신분 상승에 자신을 불사른다.

나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사람인데.
나는 이 정도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
나는 더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하는데.
나는 지금보다 더 인정받아야 하는데.

더 공부하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더 인정받으려고 한다.

어쩌면 한국의 엄청난 교육열과 성공에 대한 집착도 여기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은 단순히 잘살고 싶어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경쟁은 단순한 생존 경쟁이 아니다. 인정받기 위한 경쟁이고, 자신의 정당한 위치를 증명하기 위한 경쟁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의 장점과 단점이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 남들보다 먼저 하는 것. 더 좋은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 교육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것. 새로운 기술을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것이 한국 사회를 굉장히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교와 서열, 눈치와 경쟁,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집착도 만들어냈다. 모두가 위로 올라가려고 하다 보니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한국은 재미있는 나라다. 굉장히 빠르고, 굉장히 뜨겁고, 굉장히 피곤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한국이 역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국민성이 부지런해서도, 성격이 급해서도 아닌 것 같다. 그 안에는 고착화된 사고방식이 있다. 무엇이 옳은가를 끊임없이 묻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의식하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려는 욕망.

이 문법을 이해하고 나면, 왜 이 땅에서 모든 논쟁이 순식간에 도덕 싸움으로 번지는지, 왜 다들 그렇게 자신의 위치와 정당성에 목을 매며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정당한가를 증명해 내야만 비로소 대중에게 인정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거대한 극장이다.


1.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이다. 한국은 확실히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 지향적'과 '도덕적'은 다른 것이다. '도덕 지향성'은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 p.13

그렇다고 한국인이 특별히 더 도덕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사회를 이해하고 질서를 세우는 기준 자체가 도덕이라는 것.

여기서 인지부조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도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지만 정작 자신은 도덕을 지향할 뿐 도덕적이지 않은 경우들. 이들을 우리는 위선자라고 부른다.


2.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항상 여기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도덕을 쟁취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필사적으로 자기선전을 하고 있다. (...)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에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조선 시대에는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모두가 믿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무력으로 투쟁하지 않고 이론으로 투쟁하였다. 우리 도덕이야말로 올바르다는 논리로 싸운 것이다. 이 투쟁에서 패하면 사형이나 유배를 면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 죄가 가족과 친척에게까지 파급된다. p.22

모두가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조선시대 때부터 이 사고방식이 세뇌되어 굳어져 버렸다. 도덕을 쟁취해야 권력과 부를 쟁취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 국민 DNA에 박혀버렸고, 이 굴레를 벗으려면 앞으로도 몇 세대는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3.

주자학에 의해서 나라의 정서에서부터 풍속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개조된 것이 조선 왕조 500년 역사였다. p.64

500년 동안이나 정신이 개조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조선인'으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4.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는 관념을 어떤 한국인도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 리고 '있어야 할 자리'와 지금 실제로 자신이 '있는 자리'와의 거리를 줄이려고 항상 노력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생이다. (...) 한국인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그것과 거리가 생겼을 때에 소란을 피우며 괴로워한다. 원래는 자신이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장애로 '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저 '자리'에 앉고 싶다는 동경, 그리고 앉을 수 없다는 고통, 그것이 '한'이다. p.67

내가 '있어야 할 자리''있는 자리'와의 갭의 차이만큼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인생을 산다. 그 간극을 끝내 줄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으로 간주하며, 평생 '한'이 맺힌 채로 살아간다.


5.

웃는 얼굴로 말을 주고받아도 눈은 매처럼 예리하게 빛나며 상대의 '리'의 많고 적음을 평가하고 있다. 상대의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위아래로 훓어보고 나이, 지위, 학력, 가문, 고향, 부 등을 측정하여 총계를 산출해 낸다.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은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주저 없이 직접 묻는다. (...) 기본적인 '리'의 많고 적음을 모르고서는 상대에게 안심하고 말을 건네는 것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p.69

가끔씩 대화가 불편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머릿속에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는게 느껴질 때.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부터 파악하는게 중요한 사람들. 요즘 나이물어보는 사람들이 부쩍 줄기는 했다.


6.

한국인이 자주 하는 것 중에는 '눈치를 본다'는 행위가 있다. '눈치'란 윗사람의 안색, 기분, 표정 등의 의미로 '눈치를 본다'는 그 장소나 사람의 분위기, 낌새 등의 '기'가 상대인 윗사람의 '리'에 의해 어떻게 지배되고 있는가를 느끼고 살피는 것이다. 이것을 잘 못하는 한국인은 촌스러운 '놈'으로 전락한다. 또 '잘 보이다/잘못 보이다'라는 개념도 한국의 일상생활에서는 중요하다. 윗사람에게 잘 보일 수 있으면 앞길은 밝고, 그것을 잘 못하면 장래는 없다. p.69

눈치를 잘 본다는게 사회적인 센스일 수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과도하게 남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 눈치 보면서 죽을 때까지 남의 인생을 사는 부류들. 진짜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7.

나이는 사회적 상하 관계를 측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위이면 그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존재이다. (...)리의 세계에서는 한살이라도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 가치가 깃들어 있지만 기의 세계에서는 젊으면 젊을수록 좋다. (...) 나이를 먹을수록 청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강한 아쉬움의 정서가 한국인에게는 존재한다. '청춘을 향한 한'인 것이다. 리의 세계에서의 나이와 기의 세계에서의 나이라는 반대 방향의 힘에 이끌려 한국인은 언제나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한다. p.72

이러나 저러나 고통인 한국인들. 나이 필터를 빼고 관계를 맺을 줄도 알아야지.


8.

'님'에게 정당성과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 '님'은 '놈'이 된다. (...) 한국의 역사는 '놈'이 '님'이 되어 가는 역사이다. '놈'은 항상 새로운 '님'이 되어 역사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은 '놈'을 만들어 내고 배제한다. 그것은 이상에 빛나지만 시체가 쌓이는 '리의 쟁탈사'라고 할 수 있다. p.183

확실히 한국인들은 '놈'이 '님'이 되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님'이 되려면, '정당성'과 '정통성'을 반드시 쥐고 있어야 한다.